주제: 잊혀진, 잊히지 않는

잊혀진, 잊히지 않는

 

우리는 매 순간 기억과 망각 사이를 횡단하고 진동합니다.

잊어도 좋다고 여겼다가

끝내 잊을 수 없기도 하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어느새 잊기도 합니다.

삶이란 어떤 것을 잊지 않는 노력이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잊으려는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입니다.

 

역사는 기록되지만 사랑은 기억됩니다. 

광장의 기록과 밀실의 기억으로 편입되기까지

우리는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에서

끝없는 불균형의 시소를 타야 합니다.

쉼 없이 발을 굴러 두 개의 지점을 왕복하며 그네를 띄워야 합니다.

보존과 상실이 서로 등을 맞대고 

낮밤이 교차되는 이 세계가 바로 우리의 놀이터입니다.

 

지금 사랑을 끝낸 사람은 잊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제 사랑을 시작한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어제 저 무덤에 누운 자는 잊어도 좋은 것이 많지만

오늘 요람에서 일어선 자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 사람의 가슴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따스함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생애의 총량이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렸다는 전언을 기억합니다. 

겨울을 맞이한 고원의 빛나는 별에서부터

봄으로 들어선 평원의 풀 한 포기까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신음하는 군중부터 

시계태엽의 맞물린 톱날 사이에서 쪼개지는 개인까지

잊혀진 것들과 잊히지 않는 것들은

종종 겹치거나 스치며 포개지거나 엇갈립니다.

 

작가는 남아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에 관한 가장 예민한 감식가입니다.

통합과 분해의 실험자이며 복원과 상실의 선별자입니다.

우리가 높이 쌓은 석탑의 공간과 흘려보낸 강물의 시간이 

이번 작가축제를 통해

가장 장식 없는 본연의 목소리로 

충돌하고 교차되며 증폭되고 통섭하기를 희망합니다. 

 

해이수(소설가)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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